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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의 극장골, '대팍 정글'에서 포효하다: 박태하의 포항을 무너뜨린 김병수 감독의 승부수 (K리그1 19R 상세 분석)카테고리 없음 2025. 6. 17. 23:42728x90반응형
서론: 무승부, 그러나 희비가 엇갈린 90분 드라마
2025년 6월 17일, DGB대구은행파크의 조명이 꺼졌을 때 전광판의 숫자는 1-1 무승부를 가리켰다. 하지만 그라운드 위 양 팀의 표정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최하위 대구 FC에게는 패배 직전에서 낚아챈 '승점 1점'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결과였고, 상위권 포항 스틸러스에게는 다 잡은 승리를 놓친 '패배 같은 무승부'였다. 이 경기는 단순한 TK 더비를 넘어, 강등권 탈출을 위한 처절함과 우승 경쟁의 냉혹함이 교차한 한 편의 드라마였다.
경기를 앞둔 양 팀의 상황은 명확했다. 대구는 리그 12위 최하위에 머물러 있었고, 김병수 감독 부임 이후에도 2무 1패로 아직 승리가 없었다. 최근 7경기 연속 무승의 늪에 빠진 대구는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영입한 김주공, 정현철, 그리고 친정으로 복귀한 홍정운 등을 통해 분위기 반전을 절실히 꾀하고 있었다. 반면, 포항은 리그 5위권에서 상위권 도약을 노리고 있었다. 최근 3연승의 가파른 상승세가 직전 김천 상무전 패배로 한풀 꺾인 상황에서, 하위권 팀을 상대로 반드시 승점 3점을 확보해 분위기를 다잡아야 했다.
이 경기의 중요한 심리적 변수는 '대팍'이라는 공간 그 자체였다. 포항 박태하 감독은 경기 전 "대팍 기운이 묘하다. 정글 같은 곳"이라며 극도의 경계심을 표했다. 이는 DGB대구은행파크 개장 이후 포항이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징크스를 의식한 발언으로, 경기의 향방을 예측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였다. 결국 1-1이라는 객관적인 결과는 양 팀이 처한 상황과 목표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었다. 대구에게 이 무승부는 새로운 감독 체제 아래서 강팀을 상대로 얻어낸 성공적인 저항이자 반등의 발판이었고, 포항에게는 우승 경쟁 길목에서 발목을 잡힌 전략적 실패이자 특정 장소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재확인한 뼈아픈 결과였다.
전술 분석: 판을 지배한 자와 판을 뒤엎은 자
전반전: 박태하의 포항, 대구를 완벽하게 질식시키다
전반 45분은 박태하 감독의 전술적 완승이었다. 포항은 경기 전 예고된 스리백과 실제 운영된 4-4-2 포메이션을 유연하게 오가며 대구를 압박했다. 특히 어정원과 김인성을 활용한 오른쪽 측면을 집요하게 공략하며 대구의 수비 라인을 흔들었다.
중원에서는 오베르단이 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며 경기를 지배했다. 그의 왕성한 활동량과 정확한 판단력은 대구의 중원을 무력화시키는 핵심 요인이었다. 포항의 지배력은 전반 31분 선제골로 결실을 보았다. 조르지의 프리킥이 대구 수비수 황재원의 발을 맞고 굴절되는 약간의 행운이 따랐지만, 이는 세컨드 볼에 대한 높은 집중력과 페널티 박스 안으로 쇄도한 오베르단의 탁월한 위치 선정이 만들어낸 필연에 가까운 결과였다.
이 골은 포항의 전반적인 우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반면 대구는 전반 45분 동안 단 한 개의 슈팅도 기록하지 못하는 전술적 완패를 당했다. 이는 포항의 체계적인 압박과 견고한 수비에 공격으로 나아갈 모든 경로가 완벽히 차단되었음을 의미했다.
후반전: 김병수 감독의 '올인', 판을 흔들다
패색이 짙던 후반, 김병수 감독은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후반 9분, 정재상과 한종무를 빼고 '해결사' 에드가와 '플레이메이커' 라마스를 동시에 투입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선수 교체를 넘어, 수세에서 공세로 경기 운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하겠다는 명확한 신호였다.
이 변화는 즉각적인 효과를 낳았다. 라마스가 3선까지 내려와 볼 배급을 책임지면서 꽉 막혔던 대구의 공격에 비로소 활로가 트이기 시작했다. 최전방에는 에드가라는 명확한 타겟이 생기면서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의 효율성이 극대화되었다. 대구는 수비 라인을 전체적으로 끌어올리며 점차 주도권을 가져왔고, 포항 수비진은 전반과 달리 상당한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김병수 감독의 전술적 도박은 후반 37분, 완벽하게 성공했다. 오른쪽 측면에서 장성원이 올린 크로스를 에드가가 타점 높은 헤더로 마무리하며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린 것이다. 이는 전반전의 무기력함을 단번에 뒤집는, 감독의 용병술이 만들어낸 짜릿한 결과물이었다. 포항은 대구의 예측 가능하지만 효과적인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이는 결국 다 잡았던 승점 3점을 놓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플레이어 포커스: 두 브라질리언의 희비
'포항의 박지성' 오베르단: 완벽했던 80분, 아쉬웠던 10분
이날 오베르단은 선제골(시즌 6호)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90분 내내 그라운드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브라질 3부 리그 출신이라는 배경이 믿기지 않는 그의 K리그 성공 신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스토리다. '포항의 박지성', '영일만 오씨'라는 애정 어린 별명처럼 , 그는 엄청난 활동량으로 공수 양면에 기여하며 박태하 감독 전술의 핵심 엔진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이미 2023시즌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며 기량을 공인받은 그는 , 이날 역시 자신의 가치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의 눈부신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이 승리하지 못하면서, 그의 '원맨쇼'는 결국 미완의 작품으로 남았다. 팀의 리드를 지키지 못한 마지막 10분은 그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대구의 해결사' 에드가: 위기의 순간, 신이 강림하다
교체 투입만으로 경기장의 공기를 바꾼 선수가 있다면 바로 에드가였다. 그의 등장은 포항 수비진에 즉각적인 물리적, 심리적 부담을 안겼고, 표류하던 대구 공격에 명확한 구심점을 제공했다. 동점골 장면은 그의 장점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장성원의 크로스가 올라오는 순간, 상대 수비수와의 치열한 경합을 이겨내고 정확한 위치를 선점하는 그의 동물적인 득점 감각은 여전했다. 그는 과거에도 포항을 상대로 중요한 골을 기록하며 '포항 킬러'의 면모를 보여준 바 있으며, 이날 그 명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그의 골은 단순한 동점골이 아니었다. 강등권에서 허덕이는 팀과 절망하던 팬들에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 힘찬 포효였다.
지표 오베르단 (Oberdan) - 포항 에드가 (Edgar) - 대구 출전 시간 90분 36분 (교체 투입) 득점 1 1 슈팅 3회 2회 유효 슈팅 2회 1회 활동량 최상 (경기 지배) 높음 (공격 집중) 경기 내 역할 팀의 엔진, 공수 조율 게임 체인저, 해결사 감독의 목소리: 기자회견으로 본 양 팀의 현실과 과제
박태하 감독의 자책과 아쉬움: "무승부는 패배와 같다"
경기 전 "대팍은 정글"이라며 경계했던 박태하 감독의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되었다. 경기 후 그의 인터뷰는 아쉬움과 자책으로 가득했다. "무승부는 패배와 같다"는 한 마디는 상위권 경쟁팀 감독으로서의 냉정한 현실 인식을 보여준다. 그는 "수비 집중력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리드를 지키지 못한 선수단을 질책했고, "이기고자 하는 동력이 둔하게 나타났다"며 정신적인 측면의 문제까지 꼬집었다. 그의 인터뷰는 단순히 한 경기에 대한 평가를 넘어, '우승'을 노리는 팀이 반드시 갖춰야 할 '굳히기 능력'의 부재라는 더 큰 과제를 드러냈다.
김병수 감독의 안도와 희망: "귀중한 승점 1점, 포기하지 않은 선수들에게 만족"
김병수 감독에게 이날 무승부는 승점 1점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는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 만족한다"며 팀의 정신력을 높이 평가했고, 이는 위기에 빠진 팀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또한 "우리가 하고자 했던 것들을 오늘은 거의 못했다"며 전반전의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 강팀과의 원정 경기에서 승점을 따낸 결과 자체에 만족감을 표했다. 이는 현실적인 목표 설정과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해야 하는 강등권 팀의 절박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경기는 김병수 감독 체제가 나아갈 방향, 즉 실리적인 축구를 통해 어떻게든 승점을 쌓아가는 '생존 축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결론: 한 걸음 멈춘 포항, 한 걸음 나아간 대구
이날 무승부로 포항은 승점 29점(8승 5무 6패)을 기록하며 상위권 도약의 기회를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반면 대구는 승점 13점(3승 4무 12패)으로 여전히 최하위에 머물렀지만, 11위 수원FC와의 격차를 유지하며 생존을 향한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포항에게는 '왜 우리는 대팍 징크스를 깨지 못하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이 남았다. 이 경기는 포항이 진정한 리그 최상위권 강팀으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보완해야 할 '경기 마무리 능력'과 '원정 변수 극복 능력'이라는 과제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다 잡은 경기를 놓치는 패턴이 반복된다면, 길고 험난한 우승 경쟁에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대구에게 이 경기는 단순한 무승부가 아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심리적 승리였다. 해결사 에드가의 부활, 위기 상황에서 빛난 김병수 감독의 용병술, 그리고 '대팍'이라는 강력한 홈 이점을 재확인한 것은 남은 시즌 생존 경쟁에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다.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보강된 새로운 전력과 함께 이 경기가 대구 반등의 서막이 될 수 있을지, K리그 팬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축구 중계를 통해 90분간 생생하게 펼쳐진 이 드라마는 K리그가 가진 예측 불가능성과 각본 없는 재미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순위표의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정글'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명승부였다. 다음 라운드, 두 팀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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